괜히 한겨레21 편집장에게 대들었어
답장이 올 줄은 몰랐다. 정말 몰랐다. 월요일까지 수신 확인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메일에 답장까지 준 것이다. 어떻게 주간지의 편집장이 일개 독자의 항의성 메일에 직접 회신을 준 것이었다. 혹시나 기대를 했으나 적잖이 당황했다.
상황은 이랬다. 이제 곧 한겨레21 1년 구독이 끝나간다. 이 시점에는 구독 연장 전화가 올 것이다. 따라서 요즘 배송지연 문제에 스트레스가 상당했기에 구독을 끊겠다는 결심이 선 상태였다. 어떻게 이 열받음을 한겨레21에 전달을 할까 고민하다 새롭게 바뀐 편집장과 서비스센터에 항의 메일을 보내기에 이른 것이다. 제목은 "올해는 한겨레21 구독 연장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합니다"였다. 물론 이런 메일을 대리나 과장도 아닌 편집장에게 보내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다만 그 주 한겨레 21 편집자의 말(만리재에서)에는 독자를 앞으로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말을 있었기에 감히 이 메일을 보냈다.
우선 양해의 말로, '삼성 휴대폰이 고장나면 이건희 회장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해야겠지만'으로 시작하며 내 사정을 알렸다. 1년동안 한겨레가 많이 재미없어졌다, 재미있는 글도 없고 변화의 역동성도 찾을 수 없다, 집필진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등등을 적으며 이는 기다릴 수 있는 부분이라 했다. 다만, 배송지연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포기했다 하였다. 최소한 수요일 정도는 와야 하는데 요즘은 아예 한 주를 건너뛰기까지하고, 이럴꺼면 이제는 아침 출근길의 노상 가판대에서 사는 길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글이 좀 직설적이어서 칼을 던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용기에서 발신을 눌렀다. 보내놓고도 좀 후회는 되었다.
지난 월요일에 간신히 로그인하여 메일 미수신을 확인하였을 때는, 안도와 함께 그러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메일에 로그인하여 스펨메일 잔뜩 지워나가던 찰라, 편집장 이름이 눈에 띄었다. 혹시나 열어봤는데 진짜 내 메일에 대한 회신이었다. 편집장은 메일에 크게 놀랐고 당황했다며 이러한 일들을 앞으로 고치겠다고 했다. 구독을 끊겠다는 의견을 존중한다고도 했다. 단, 앞으로 정말 콘텐츠를 다양화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할 것이고, 혹시나 다시금 기회가 된다면 돌아와 달라고 하였다. 독자 1명이 소중하다며.
황송하게 편집장의 메일을 받고 다시돌아가겠다(?)는 결심이 굳은 건 아니다. 대신, 기자들이 정말 열심히 취재하고 기록한 것들을 독자로서 잘 보고, 비판하고 있냐는 내면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지난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지면의 모든 글자(사진 옆의 작은 설명 등)는 다 볼 수 없었지만 한 80%는 다시 훓어봤다. 심지어 건전한 비판을 하기 위해 건전한 독자가 되어 보자는 생각까지 들었다. 연탄재의 말처럼 '편집장 함부로 뭐라 말라, 너는 언제 기사 한 번 제대로 읽은 적이 있었는냐' 란 마음이 뭉실뭉실 피어났다. 열혈독자가 되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며 결국은 괜히 편집장에 대든것은 아닌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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