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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가족회의를 엿듣다

 가족회의를 엿듣다.


 여자친구가 추천을 해 준 카페에 왔다. 다 좋은데 소음이 좀 크다. 이정도는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로 꿋꿋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책 읽기를 포기한 소리가 있었으니 내 앞에 앉은 가족(어머니, 아들, 딸 추정)회의 때문이다. 주제는 아들의 회사 사직인 듯 하다.


 아들은 사직 계획성의 타당성을 설명 중이다. 옆에서 여동생이 거들고 있다. 어머니는 말리고 있다. 뭐, 모든 사직이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아들은 수백번 고민을 한결과 설득한다. 잠시 딴 이야기지만 내가 읽고 있던 책이 생각의 시대다. 이 책에 논증, 설득의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고 있다. 방금 읽은 부분이 예시를 들라는 예증법이었는데 아들이 예를 들어 어머니를 설득하면 어떨까 싶었다. 다시 원래로 들어와서. 이제 아들은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사회 생활도 일찍 시작했다, 실장님 또한 너 같은 녀석은 어디서든 다 할 수 있다 했다(아! 이건 예증법이다)라고 한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신다. 일단 고개는 끄덕이시지. 옆에서 여동생이 거든다.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 그러면서 두 사람이 하이파이브를 작렬한다. 다시 길로 빠져서 난 저 하이파이브가 참 싫었다. 자기들끼리 같은 편이라는 듯, 우리는 같은 편 넌 저쪽편을 갈라치는 행위가 하이파이브라 생각한다. 어찌되었던 다시 원래로 돌아와서. 어머니는 틈을 타서 아들을 진정시키고 아들을 설득하려 하는 것 같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이제 아들은 자신이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살이 쪽 빠졌다고 한다.(어머니는 하품 후 화장을 잠시 고치신다.)


 이 대화가 어떻게 끝날지(이제 어머니는 반격의 준비를 마치신 거 같다)는 잘 모르겠다. 아주 흥미롭지만 나 또한 책을 다시 읽어야 하니 말이다. 어찌되었건이 가족회의에 대한 내 단상은 이렇다.


 첫째, 요즘 보고 있는 은하영웅전설-해후와 관련이다. 은하자유연맹과 제국군의 싸움 속에 나타난 두 영웅이 주된 스토리다. 친구 케이가 말했다. 이 애니는 결국 사공이 많은 은하자유연맹과 사공 한 명만 노를 저으려 했던 제국군의 모습이 다 드러난다고. 가족회의란 게 따로 없었던 우리집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이 가족회의가 나름 부럽다. 어느 정도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겠지. 이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논의하는 게 얼마나 좋게 보이는지. 반면, 아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제국주의도 나름 괜찮은 거 같다.(그렇다고 우리집이 이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집은 무정부주의였지) 어머니가 뺨 한대 갈기거나 신용카드 수거하면서 닥치고나 일 하라면 끝이니까 말이다.


 둘째, 아직은 저 아들이 회사에서 일을 좀 했으면 좋겠다. 아들의 사유와 여동생의 어시스트를 들어봐도 약간의 근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너가 뭔데!) 사직의 사유는 특별한건 없는 것 같고, 사직 후 계획이 특별하게 구체적이거나 어머니의 마음을 진정시키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향후 계획이 아르바이트라는 건 좀 그렇다. 회사는 전쟁터나 밖은 지옥이라는 TV드라마 미생의 명언이 있지 않은가.


 어찌되었든 토요일 오후, 새로운 카페를 찾아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기도하고 내가 나름 회사에서 잘 버티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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