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기 위한 공식
내가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후회할 이별을 했다. 진즉 했어야 마땅함에도, 아직도 못한 이별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우리의 연애 이야기는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자랑스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 때 더 솔직했어야 했다. 모질게라도 ‘이제 그만 하자’라 말했어야 했지만, 나란 사람은 언제나 좋은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서 헤어지자는 문자 통보가 정말 고마웠다. 여름의 열대야가 목을 조르던 대학교 4힉년 여름이었다. 선풍기도 없던 3평 남짓의 용광로 자취방에서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양양은 대만의 중산층 가정의 막내로 초등학생이다. 양양의 외삼촌 결혼식날에 외할머니가 쓰러지는데, 가족들은 저마다 겪고 있는 소통의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빠는 결혼식 피로연에서 대학교 첫사랑과 우연히 마주친다(우연이 '우연히'). 엄마는 삶의 회환을 느끼던 중, 친정 엄마까지 의식이 없자 이를 견디지 못해 홀로 훌쩍 절로 간다(자우림 '일탈'), 양양 보다 7살 많은 고등학생 누나는 친구의 남친과 눈이 맞는다(홍경민 '흔들린 우정'). 그리고 또래들보다 성장이 늦은 양양은, 그의 행동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담임과 친구들 때문에 곤란한 상황들을 겪는다(아스피린 '걸‘)
장모의 병환, 아내의 방황, 직장의 위기 속에서 양양의 아빠는 가족을 챙기기 위해 재택근무(?)를 결심한다. 그러던 중, 회사의 일본 출장길에 첫사랑과 다시 만나기로 한다. 옛 연인들은 업무비를 데이트비용으로 유용해가며 과거를 추억한다. 그녀는 양양의 아빠에게 다시 시작해보자고 한다. 그는 머뭇거리고 말을 돌린다. 귀국을 앞두고, 드디어 용기를 내서 고백을 한다. 긴 시간 동안 당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의외였다. 그녀는 다음날 사라지고 만 것이다.
양양의 아빠가 꿈에서나 알았을 것 같은 이 이별은 당연하기도 하고, 납득이 안 되기도 한다. 30년 가까이 기다려온 첫사랑에 한다는 말이 고작 '솔직하지 못했다' 였다. 솔직하지 못했다는 말이 정말 솔직하지 못한 거짓말로 느껴졌다. 나였으면 김치 한 포기로 뺨을 때렸을 것이다. 그런데 양양의 아버지는 알고 있지 않았는가.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모습의 절반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남은 내 모습을 보기 위해, 하나가 아닌 둘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양양에게 카메라를 쥐어지며 마음대로 사진을 찍으라 했고, 양양은 사람들의 신나게 주변 사람들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첫사랑과 좋았냐는 아내의 질문을 종종 받는다. 첫사랑은 방패연 2개라며 어느 영화의 대사로 겨우 방어를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 궁금증은 일었다. 그 때 더 솔직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하고 말이다. 다만 양양이 돌아가신 할머니께 건낸 말에서 명쾌한 답을 하나 더 얻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모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특별히 말할 것이 없었다고 하였다. 할머니는 언제나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들어줬기 때문이란다. 고로, 내 과거의 질문을 이 영화로 풀면 아래와 같은 공식을 그려본다.
추신(수?) = 이 영화는 당연히 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영화를 통해 인간의 수명이 3배나 늘었다는 대사가 있는데, 영화인들은 도의적 차원에서도 상을 줘야 하지 않았겠나. 오래 사는 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일단은 영화를 많이 보리라 결심한다. 글로 남기면 더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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