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 스트레이드
가정폭력과 가난한 환경에서도 엄마를 버팀목 삼아 살아왔지만,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스스로 무너져 내린 나약한 멘탈의 소유자.
이혼과 마약, 무의미한 관계들로부터 삶의 바닥을 치고 올라서기 위해, 생뚱맞게도 악마의 코스 횡단을 급발진으로 선택한 사람임
아무것도 몰라 다 챙겨넣은 베낭과 함께 텐트와 가스 버너 사용까지 책으로 익히며 나선 하이킹이 쉬울 리 없었으나, 지난 삶을 차분히 되돌아보고 그것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동력 삼아 결국은 횡단에 완주한 PCT의 여왕.
Just do it, 나이키가 광고로 당장 모셔가야 할 베스트셀러 작가
변화
그런 게 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고, 옆에서는 미쳤다고 뜯어 말리지만 머리는 '그거'라고 외치는 순간 말이다(...결혼 말고). 영화 와일드의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에게는 그것이 PCT였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확인하고, 짐작만 가는 애아빠를 죽이려 찾아 가는 길에 그녀는 깨닫는다. 본인의 인생이 쓰레기가 되었음을, 한 때는 괜찮았고 꿈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말이다. 그러고는 가던 길을 돌린다. 이국적인 호숫가 풍경의 책표지 때문이었을까. 무의식속에 무심코 짚어 들었던 PCT 가이드라인 책을 사러 간다. 이렇게 그녀의 첫 도보여행이 시작된다. 하늘 나라에 있는 엄마한테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한다는 목표와 함께 나선다.
하이킹 경험이 없는 그녀는 첫날부터 텐트 치는 법을 책으로 익혀가며 겨우 노숙을 면했다. 초원지대는 곧 설원으로 바뀌고, 때로는 몸을 적셔가며 강을 건너고, 야생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불안한 밤을 수없이 보내야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악마의 코스라 불리는 여정에 오르면서 그녀는 지나 온 인생을 반추한다. 가정 폭력과 가난에도 버팀목이 되어준 엄마가 죽고 난 후, 나락으로 떨어졌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항상 최고의 모습을 찾으려 노력하였던 엄마의 가르침을 상기하고, 다시는 옛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그 굳은 의지가 신들의 다리라는 종착점에 이르게 한다. 소의 걸음으로 만리를 간다는 말처럼, 새로운 변화를 간절히 염원하는 우직함으로 PCT 횡단에 성공한다.
내게도 그런 게 있었다. 바야흐로 앞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뭘 할 수도, 뭘 해야 하는지도 몰라서인지 열대야가 숨통을 쪼이는 것 같은 4학년 여름이었다. 조교 형이 한국어교원능력검정과정을 같이 수강하자고 꼬득였다. 남들은 CPA나 감정평가사 같은 폼나는 자격 시험을 준비하던데, KBS 한국어능력시험 보다도 생소하였다. 다음달 월세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다. 결국, 지금 아니면 전 재산을 걸어볼 일도 없다는 심정으로 수업 등록을 덜컥 했다. 이것이 내 삶의 차선 변경을 일으켰다. 수업 중에 우연히 한국어 해외 봉사를 알게 되어 처음으로 외국에 나갔고, 서른이 넘어 힘겹게 입사한 지금의 회사도 결국은 한국어교육과 연관이 있다.
그래서 말이다. 그런 게 있어야 한다. 셰일 스트레이드와 같이 문득 멈춰서서 지금 내 삶의 어디에 와 있냐고 되물어야 한다. 내가 그렇게 꿈꿔 왔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라면 왜 아닌지, 경로를 약간은 이탈하였지만 이게 더 맞는 길일 수도 있는지 확인을 해야한다. 하염없이 산비탈로 굴러 떨어지는 등산화를 보며 남은 등산화를 내던지며 화를 내는 주인공처럼, 가끔은 답답한 현실에 소리도 크게 질러야 한다. 다시 좌표를 설정하고 과감하게, 우직하게 내딛어야 한다. 영화가 말해주듯 내 삶은, 우리 모두의 삶은 신비롭고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야성적(wild)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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