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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학교 얼쑤국문/내 자식들

채만식의 패러디 심봉사의 의미 연구


- 합동 과제였음!!

2. 소설을 이용한 희곡으로의 변용

 

심봉사가 소설이 아닌 희곡으로, 즉 전통적인 서사양식에서 서구적인 극적형식으로 쓰여 졌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앞서 간략하게 언급한 바, 채만식은 해외의 문예 이론을 잣대로 조선의 문학을 재단하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외국문학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경고성 발언은 날카로웠다.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의 평론가가 물론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일부는 진정한 평론가라기보다도 백운거사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백운을 타고 공중에 떠 셰익스피어로 더불어 놀면서, 읽어도 뜻을 모르는 요파의 주문 같은 율리시즈를 읽고, 그러다가 가끔 지상에 내려와서는 어찌 이 땅에는 세계적 대작이 나오지 않느냐고 노마의 등에 채찍질이나 하기.

 

채만식은 이러한 사람들을 ‘백운거사’로 조롱하며 우리 문학이 진정한 발달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하는 어렵다 하였다. 그러면서 고전 문학에 눈을 돌리는 한편, 작가들에게 교양을 쌓을 것을 호소한다. 1930년대 초반부터 문단의 현상이나 문화현상 일반으로서의 독자들의 수준이 만족할만한 상황이 아님을 깨달은 그는 고전문학에로 관심을 돌린 결과 심봉사, 흥부씨, 배비장, 허생전 등이 쓰여진 것이겠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심봉사는 소설로서 탄생되는 게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마지막에 선보인 작품은 희곡으로서의 심봉사였다. 원작 고전 심청가를 희곡으로 바꿔 집필한 이유는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다. 채만식의 작품 활동을 살피거나 그가 남긴 희곡 2편과 소설 1편의 심봉사를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해본다.

희곡의 목적은 극의 상연이다. 그렇다면 채만식은 심봉사라는 작품의 연극 상연을 목적으로 글을 썼을까? 이점보다도 채만식은 소설보다는 희곡의 형식이 심봉사를 쓰는 데 용이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채만식은 원작 심청전을 빌어 제목을 심봉사라 하였다. 이는 대비적 글쓰기로서의 패러디기법이 아니다. 최인훈의 놀두뎐이나 허생의 처는 패러디 원작에서의 정반대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였다. 때문에 대칭점에 놓인 인물로 패러디하는 것은 다시쓰기(re-write)의 일환으로 작품 전개를 용이하게 한다. 제목부터 알 수 있듯 심봉사는 이와는 거리가 있다. 여기에 ‘현대작가 창작 고심합담회’라는 글에서 우리는 채만식의 패러디관을 짐작할 수 있다. 채만식은 작품의 소재를 ‘있는 사실’이나 ‘있을 수 있는 사실’에서 취하며 작품의 표제는 작품의 내용이 초점이 되게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렇다면 작품의 제목인 심봉사는 실제 있을 수 있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 원작(심청전 혹은 판소리 심청가)의 서사형식이 희곡인 극적형식으로 바뀐 이유를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채만식이 ‘있을 수 있는 일’에 개연성을 부과하려는 시도는 당연히 원작의 허구적 요소를 제거하는 작업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심청전이 구조는 (1) 심청의 출생 (2) 심청의 성장과 효행 (3) 심청의 죽음과 재생 (4) 부녀상봉과 개안이다. 심청전의 구조속에서 (3)과 (4)는 허구적 요소다. 때문에 이 요소들을 제거하거나 사실적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고민을 채만식은 문학양식의 바뀜으로 극복하려 하였다.

이러한 시도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김일영의 연구에서 어느 정도 밝혀진 듯 보인다.

잠시 살펴보면, 희곡의 특성은 장과 막이다. 막으로 구성된 희곡의 특성상 막과 개연성 반비례의 관계다. 막과 막 사이의 개연성은 크게 구애받지 않을 수 있으나 결론부분에 이르러서는 통일성을 잃게 된다. 첫 희곡이 8막 20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심청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등 전체적인 통일성을 잃은 모습이었다. 이 통일성을 지키고자 다시 쓴 소설에서는 그가 말했던 전기적 요소에 실패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서 극적 완전성을 갖춘 작품이 1947년에 발표된 「심봉사」이며 희곡적 형식차용에 있어서도 성공적이었다 평한다. 확실히 마지막 작품 「심봉사」는 굉장한 노력이 엿보인다. 첫 희곡의 시대가 고려초기였지만 세 번째 작품에서는 고려중엽이다. 16년의 시간을 없애고 말하고자 하려는 부분만 집중적, 전략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채만식은 희곡형식을 이용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거듭하여 높였고, 결국 「심청전」이란 고전작품이 「심봉사」라는 현대적 문학작품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희곡형식을 빌린 「심봉사」의 작품성 보다 작가정신에 더 주목하고 싶다. 우리의 옛 이야기의 관심과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너무 잔가지가 많았다... 이하 생락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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