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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학교 얼쑤국문/내 자식들

한문고사들

- 작성 이유는 모르겠음

1. 창조리 (사람이름)

 

 

창조리는 고구려사람이다. 봉산왕 때에 나라에 재상이 되었는데 이때 모용외가 국경에 환란이 근심거리가 되었다.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모용씨가 군대가 강해서 자주 우리의 국토를 침범하니 그것을 어떻하나. 창조리가 말했다. 북부에 대형인 고노자가 어질고 또한 용감합니다. 대왕께서 만일 도적을 막아 백성들을 편안케 하시길 바란다면 고노자가 아니면 쓸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왕이 신성태수로 삼으니 다시는 처들어 오지 않았다. 봉산왕 가을 8월 왕이 나라안 장정 15살 이상인 자를 동원하여 궁실을 수리하니 백성들이 식량에 결핍하고 노역에 피곤하여서 그것으로 인해서 도망가니 창조리가 간하여 말하였다. 하늘에 재앙이 거듭 이르느니 해마다 곡식은 자라지 않고 백성들이 있는 곳을 잃어서 건장한 사람들은 사방으로 떠돌고 늙고 어린이는 구렁텅이에서 구르니 이는 참으로 하늘이 두려워하고 백성들을 근심하여 두려워 닦고 살필 때인 듯 같습니다. 대왕께서는 일찍이 이것을 생각지 않으시고 굶고 배고픈 사람을 모아다가 목석에 노역에 피곤케하니 심히 백성들에 부모가 되는 뜻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물며 이웃에 강하고 굳센 적이 있으니 만일 우리들에 피폐한 것에 틈타서 이에 처들어 온다면 국가와 백성들을 어떻게 하실겁니까. 대왕께 바라건데 깊이 헤아려 주십시오. 왕이 성을 내어 말했다. 임금은 백성들이 우러러 바라보는 것인데 궁궐이 웅장하고 위험을 보일 수 없다 위엄을 없다 함은 지금 재상은 어찌 과인을 책망하여 백성들의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창조리가 말했다. 임금이 백성들을 구하지 않는 것은 인이 아닙니다. 신하가 간하지 않는 것은 충이 아닙니다. 신이 이미 나라의 재상을 맡았으니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감히 명예를 구하겠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했다. 재상은 백성들을 위해서 죽기를 바라는가. 바라건데 다시는 긴말이 없도록 하라. 창조리가 왕이 뉘우치지 않음을 알고 물러나 여러 신하들과 함께 폐할 것을 꾀하였다. 왕이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서 목매어 죽었다.

 

 

2. 온달 (역시 사람이름)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의 사람이다. 생김새가 피곤해 보이는 모양으로 웃을만하였으나 마음속은 곧 환하였다. 집이 몹시 가난하여 항상 먹을 것을 구걸해다가 어머니를 봉양했다. 떨어진 옷, 헤진 신발로 시장거리를 왔다갔다하니 그때의 사람들이 그를 지목하여 바보온달이라 했다. 평강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좋아했다. 왕이 희롱하여 말했다. 네가 마땅히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 왕이 늘 그렇게 말했다. 딸의 나이가 16살에 이르르니 상부 고씨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공주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반드시 온달의 부인이 되라고. 지금 무슨 까닭으로 전의 말씀을 바꾸십니까. 바통사람도 오히려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하는데 하물며 지극히 존귀하신 분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르기를 왕된 사람은 장난의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대왕의 명령은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감히 공경하여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왕이 화가나서 말했다. 네가 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곧 진실로 내 딸이라고 할 수 없다. 어찌 함께 살수가 있겠는가? 마땅히 네가 갈 길을 가거라. 이때에 공주가 보물이 되는 팔찌 몇 십개를 팔꿈치에 메달고서 궁궐을 나와서 홀로가다가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나서 온달의 집을 물었다. 이에 가서 그 집에 이를러서는 눈먼 늙은 어머니를 보고서는 가까이 앞에 가서 절을 하고서는 그 아들이 있는 곳을 물었다. 늙은 어머니가 대답해 말했다. 내 자식은 가난하고 비천하니 귀인이 가까이 할 바가 아닙니다. 지금 당신의 냄새를 맡으니 향내가 보통사람과 다르고 당신의 손을 만지니 부드럽고 매끄럽기가 솜과 같으니 반드시 천하에 귀인입니다. 누구의 속임으로 인하여 여기에 이르렀습니까. 오직 우리 아이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서 산 숲으로 누릅나무 껍질을 취하러 갔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공주가 나오 다가다가 산아래 이르러서 온달이 누릅나무껍질을 짊어지고 오는 것을 봤다. 공주가 그와 함께 품을 바를 말하자 온달이 성질을 내면서 말했다. 이곳은 어린 여자가 마땅히 다닐곳이 못되니 나에게 반드시 사람이 아니고, 여우 귀신일 것이니 나에게 가까지 오지 말라. 드디어 가면서 돌아보지 않으니 공주가 혼자 돌아와서는 사립문 아래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들어가서 모자와 함께 그것을 갖추어 말하였다. 온달이 여전히 거슬러 결정하지 못하니 그 어머니가 말했다. 내 아들은 지극히 누추하여 귀인에 베필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집이 지극히 가난하여 진실로 귀인이 살 수가 없습니다. 공주가 대답하여 말했다. 옛날 사람이 말했습니다. 한말의 곡식이라도 오히려 찔 수 있고 한 자의 무명이 있어도 오히려 옷을 꾀멜 수 있다 했으니 곧 참으로 가은 마음이 된다면 하필 부귀한 후에야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금팔찌를 팔아서 밭과 집과 노비와 소와 기물들을 사니 소용되는 물품들이 모두 갖추워졌다. 처음 말을 살때에 공주가 온달에게 말했다. 상인들의 말을 사지말고 모름지기 나라말로서 병들어 수척해져서 방출을 당한 것을 택하십시오. 그런후에 바꾸면 됩니다. 온달이 그 말같이 하니 공주가 기르기를 매우 부지런하니 말이 날마다 살찌고 또한 건강해졌다. 고구려는 항상 봄 3월 3일에 낙랑의 언덕에 모여 사냥을 하는 데 잡은 멧돼지와 사슴으로서 하늘과 강과 산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날에 이르르자 왕이 나가 사냥을 하니 여러 신하들과 오부의 병사들이 모두 따랐다. 이때에 온달이 기른 말로서 뒤따라 가서 그 달리는 것이 항상 맨 앞에 있었고 자은 것도 많았다. 따른 이들이 없었다. 왕이 불러 오게 하여 성명을 묻고서는 놀라고 그것을 기이하게 여겼다. 이때 후주의 무제가 군대를 보내어 요동을 침범하니 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배산에 들어서 맞아 싸웠다. 온달이 선봉이 되어서 힘써 싸워 수십명을 목베니 모든 군대가 승함을 틈타서 크게 쳐서 이겼다. 공을 논함에 이르러서 온달을 제 1로 하지 않음이 없었다. 왕이 칭찬하여 탄식하며 이르렀다. 이가 내 사위다. 예를 갖추어 그를 맞아서 벼슬을 내려 대형에 삼았다. 이로부터 총예와 영광이 더욱 두터웠고 위엄과 권세가 날마다 성하였다. 양광왕이 즉위하여 이르러서 온달이 아뢰어 말했다. 저 오직 신라가 우리 한강 이북의 땅을 쪼개어서 군과 현을 삼았으니 백성들이 통한하여 일찍이 부모의 나라를 잊은적이 없으니 바라건데 군과 현을 삼았으니 저를 현명하지 못하다 하지 마시고 저에게 군대를 주시면 한번 가서 반드시 우리 땅을 되돌리겠습니다. 왕이 허락하였다. 떠나면서 맹세하여 말하였다. 계립현과 죽령의 서쪽땅을 우리에게 되돌리지 못한다면 곧 돌아오지 않겠다. 드디어 가서 신라군과 아단성 아래서 싸우다가 흐르는 화살에 적중한 바 되어 길에서 죽었다. 장래를 지내려하니 관이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공주가 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죽고사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돌아가십시오. 드디어 하관하였다. 대왕이 그 소식을 듣고서 비통해 하였다.

 

3. 도미 (또한 사람이름)

 

도미는 백제 사람이다. 비록 작은 집에 보통사람이지만 자못 의리를 알았다. 그 아내는 아름답고 예쁘고 또한 절개있는 행동이 있어서 그때의 사람들이 칭하는 바 있었다. 계루왕이 그 소식을 듣고서 도미를 불러다 말했다. 무릇 부인의 덕은 비록 곧고 깨끗함을 우선으로 하나 만약 깊숙하고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를 교묘한 말로 유혹한다면 곧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이는 드물다. 도미가 말했다. 사람의 정은 헤아릴 수 없지만 신의 아내같은 이는 비록 죽는다 하여도 두 마음이 없습니다. 왕이 그것을 시험하고자 하여 도미를 일로써 붙잡아두고 가까운 신하로 하여금 왕의 의복과 말을 빌려주고 밤에 그 집에 사람으로 하여금 임금이 왔다 먼저 이르고 도미의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네가 아름답다 들었는데 모이와 내기를 하여 너를 얻었으니 내일 너를 들여다가 궁인을 삼겠다. 이후로부터 네 몸은 내 소유다. 드디어 장차 그를 음란하려 하니 아내가 말했다. 나라의 왕은 망령됨이 없으니 제가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청하건데 대왕께서 먼저 방에 들어가시면 제가 옷을 갈아입고서 나아가겠습니다. 물러나와서 한 여종을 여러 가지로 꾸며서는 그를 들여보냈다. 왕이 후에 속임을 당한 것을 알고서는 크게 화를 내어 도미를 죄로써 무고하여 그 눈동자를 빼버리고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불어 내어 작은 배에 그를 태우고서는 강위로 띄어보냈다. 드디어 그 아내를 끌어와서는 강제로 그를 음해하고자 하니 아내가 말했다. 지금 남편이 이미 없어져서 오직 한 몸으로는 스스로 유지할 수 없는데 하물며 왕께서 거두워 주시니 감히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 지금 달거리로써 온몸이 더러워졌으니 청하건게 다른 날에 기다려 향기롭게 목욕한 후에 오겠습니다. 왕이 믿고서는 그것을 허락하였다. 부인이 문득 도망하여 강 어귀에 이르르나 건널 수 없으니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였다. 홀련 외로운 배 하나가 파고를 따라 이르는 것을 보고서 타고사는 천성도에 이르렀다. 그 남편이 죽지 않아 만나서는 풀뿌리를 케어서 먹고 살았다. 드디어 함께 같은 배를 타고서는 고구려의 산산 아래 이르르니 고구려 사람들이 그들을 불쌍히 여겼다. 입고 먹는 걸 구걸하여 구차하게 살다가 타관살이로서 생을 마감했다.

 

4. 연오랑. 세오녀 (끝까지 사람이름)

 

아달라왕이 즉위하고 4년에 정유년에 동해가에 연오랑과 세오녀가 있어서 부부가 되어 살았다. 하루는 연오가 바다에 가서 해초를 케는데 갑자기 한 바위가 있어서 태우고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그를 보고서 말했다. 이는 보통사람이 나이다. 이에 세워서 왕을 삼았다. 세오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음을 이상히 여겨서 가서 그를 찾아가 남편이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서는 또한 그 바위에 올라가니 바위가 또한 전과 같이 태우고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놀라고 의아하게 여겨 왕에게 아뢰니 부부가 서로 만났다. 세워서 귀비로 삼았다. 이때에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으니 일관이 아뢰어 말했다. 해와 달의 정령이 우리나라에 내려와 있다가 지금 일본으로 가버려서 그러므로 이러한 괴상한 일에 이르렀습니다. 왕이 사신을 보내어서 두 사람을 찾으니 연오가 말했다 .내가 이나라에 이르른 것은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니 지금 무엇 때문에 돌아가겠는가? 비록 그렇지만은 짐은 왕비가 짜놓은 가는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써 하늘에 제사 지내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비단을 내려주니 사신으로 갔던 이가 말했다. 그 말대로 제사를 지내니 그런후에 해와 달이 전과 같았다. 그 비단을 궁중에 창고에 보관하고서는 나라의 보물로 삼았다. 그 참고를 귀비고 라고 이름짓고, 하늘에 제사지내던 곳을 영일현이라 이름지었다.

 

5. 빈여양모 - 가난한 딸이 어머니를 봉양하다.

 

효종랑이 남산 포석정에 놀때에 문객들이 성치했다. (매우 빨리 달려왔다.) 두 사람이 늦음이 있었는데 효종랑이 그 까닭을 물었다. 말하길 분황사의 동쪽마을에 여인이 있었는데 나이는 이십가량인데 눈먼 어머니를 안고 서로 부르며 울었습니다. 동네에 물어보니 대답하기를 이 여인이 집이 가난해서 먹을 것을 구걸하다가 잡숫게 해드린 것이 몇 년이었습니다. 마침 이해에 흉년이 들어 문에 빌어먹기가 어려워져서 다른 집에 품팔이하여 곡식 30석을 얻기로 하고서는 부잣집에 그것을 맡겨두고 일을 하다가 해가 지면 쌀을 쪄서 집에 돌아와서 밥을 해드리고 함께 잠을 자고서는 새벽이면 돌아가서 부잣집에서 일을 해주는데 이렇게 하기를 며칠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옛날에 겨와 쭉정이로서는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했는데 요사이 향기로운 밥은 가슴과 간을 찌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치 않으니 무엇때문인가. 딸이 사실대로 이야기하니 어머니가 통곡하였습니다. 딸은 자기가 단지 입과 배에 대한 봉양만 할 줄 알았지 얼굴 안색을 살펴 마음을 평안케하는 봉양에는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서로 붙들고 울었고 이것을 보고서 늦었습니다. 효종랑이 가만히 듣다가 쌀 일백곡을 보내주었고 랑의 양친 또한 의복 한 벌을 보내주었고 랑을 따르는 낭도에게도 쌀 천석을 거두워 보내주었다. 이일이 신총(임금)께 도달하자 이때 진성여왕이 곡식 500석을 내려주었고 아울러 집터 한 곳을 내려주었고 군졸 무리를 보내 그 집을 지켜주어 겁주어 약탈함을 경계하여 지켜주었다. 그 동내를 표창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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