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물이 넘쳐 흐르던, 그 때를 꺼내들다
파란 발매트 한 개를 샀다. 발매트란 게 있는 줄도 몰랐다. 누렇게 찌든, 다행히 곰팡이는 피지 않은 수건을 걷어 내고 파란 발매트를 깔았다. 씻지도 않았는데 씻은 마냥 그 위에서 발을 비벼댔다. 푹신한 감촉은 어떠한 물기라도 흡입할 것 같은 기분을 주었다. 6평 남짓 자취방 화장실 앞에 놓으니 자취의 삶이 두 가지로 나뉜다는 깨달았다.
욕실물이 넘쳐 흘렀던 자취방과 그렇지 않았던 자취방으로 말이다.
25살 휴식시절을 지내고 그대로 1년 더 연장을 하였던 자취방은 몸을 씻기가 두려웠다. 조금은 오랫동안 물을 맞고 나오면은 이미 뱀처럼 욕실 턱을 넘은 물들이 방 한가운데로 몰려가고 있었다. 욕실 문앞에, 영국 왕실의 호위병 역할을 맡겨 놓았단 수건들은 그 역할을 해내지 못하기가 반복되었다. 욕실 수건의 물기를 짜내고 옥상에 말린다음 다시 깔기를 일주에 서너번 반복했다. 그러다가 곰팡이가 피고, 그러다가 생명을 다한 수건은 할 수 없이 버렸다. 몸을 닦는 수건은 바닥으로, 바닥에서 쓰레기봉투로 옮겨졌다. 곰팡이 핀 수건의 물을 짜고 햇볕에 말릴 때마다 제발 이러한 집에서 자취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었다. 자취방 고를 때 1순위를 물이 넘쳐 흐르지 않은 방으로 정했다.
그 뒤 졸업을 하고, 봉사활동을 끝내고 자취를 했던 곳은 옥탑방이었다. 자취생 정도면 뭐 옥탁방 정도는 거쳐줘야지, 하면서 2년을 살았다.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었기에 그냥 살았고, 안타깝게 욕실물이 넘쳤다. 그남아 다행인 것은 거실이 따로 있었기에 물이 넘쳐 흘러도 큰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신 가끔 비가 많이 온 다 싶으면 여기저기서 물난리가 간혹 발생했다. 참고로 그때는 별도의 발매트가 있었다. 옥탑방에 걸맞은 아주 우중충하고 냄새나는 발매트였다. 누가 신경이나 썼었는가. 그렇게 살았지.
지금 얹혀 살고 있는 자취방의 욕실물은 넘쳐 나지 않는다. 다만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물기를 비벼댈 발매트 대신 수건 하나를 대신 놓았었다. 이렇게 의식하지 않고 1년을 살아왔다. 발매트를 사고 나니 의식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다. 인식하면 행동을 해야한다. 사고와 반사의 융합, 건담의 초인병이 말하지 않았는가. 내 삶의 주도적으로 바꾸기 위해 인식하면 움직이겠다. 발매트를 우연스럽게 살 수 있었던 다이소란 곳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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