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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이제 형도 아실거예요.

오늘 이 옥탑방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네요.

몇 시간 뒤면 형과 함께 짐을 나르고 따뜻한 물이 실컷 나온다는 원룸으로 이사를 가겠지요.

 

날력을 문뜩 보니 엊그저께가 귀국 뒤 2년이 지난 날이었네요.

그리고 이 집에서 산 지가.. 정확히 말하면 얹혀 산 지가 거의 2년이나 되었고요.

2년의 세월동안 제가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언제나 형은 제가 곧 잘 될 것이라며 믿어주셨는데 아무것도 한 게 업네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이제 형이 믿고 밀어주신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욱 미안해요 형..

2년간 저 자신에게 아쉬운 것보다도 이게 더 아쉽네요. 그래서 몇 번 눈물도 훌쩍였답니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우리 형님들 중에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누군지.

당연히 답은 형이죠.

형도 형 나름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데 거기에 저까지 있잖아요.

저만 없었더라도.. 한 달에 30만원 정도는 버실 수 있으실텐데.. 좁은 1인 침대에서도 편안히 잘 수도 있었을텐데.

 

가끔 형이랑 대화를 하면 인문학이란 게 왜 필요한지 알게 됩니다.

그것이 진정 저에게 힐링이죠.

앞으로 반드시 취업이 될 것이라는 격려는 단 한 마디 없지만 신기하게도 그게 큰 힘이 됩니다.

그래도 더욱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이제 새로운 집에서 새 출발을 하자고 하셨죠?

네! 지난 날은 잊고 앞날을 위해 새 출발을 .할게요.

오늘 이사비용도 하나도 도와드리지 못해요.

대신, 이사 뒤에 꼭 먹어야 한다는 식사는 제가 꼭 대접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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