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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습진에 관한 단상

군대부터 시작하였다. 몹쓸 전염병. 습진...

실상 그것이 습진이었는지 무좀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아무튼 그것은 왼쪽 새끼 발가락과 네번째 발가락 사이에 생겼다. 자꾸 긁어대는 내 모습을 보고 군대 씨레기는 내 슬리퍼에 청테이프를 붙였다. 개같은 기분이었다. 씨레기는 자신이 무좀을 느꼈을 때 약을 바로 발라 예방했다고 자랑했다. 지랄도 풍년이었다.

 

그 뒤, 지금까지 습진과 혹은 무좀과 나는 동거를 했다. 자주 발병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주 발병하는 것도 아니어서 자주 약을 바르지 않았다. 하루 이틀 바르다가 그만 바르고.. 이것의 연속이었다. 습진은 3달에 한 번 정도 왼쪽 새끼 발가락과 네 번째 발가락에 그렇게 살았다. 아주 기묘한 동거였다.

 

그러다가 올해부터 습진이 발바닥으로 남하를 하였다. 자못 심각했다. 초기에 죽였어야 했는데 누가 알았나. 잠복기가 무려 10년이었으니까. 일단 남하하고 발바닥에 똬리를 틀자 영토확장을 시작하였다. 속수무책이었다. 이번에는 좀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무좀약을 발랐다. 실상 이게 습진에서 무좀으로 변했는지, 아니면 정확히 무좀인지 습진인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4일 연속 약을 바르기도 했다.

 

어느 덧 잠잠해지다가 이제는 왼쪽 발바닥에 사라졌다. 환호도 잠시. 오른쪽으로 해외이주에 성공하였다. 이제 오른쪽 발바닥에 영토확장을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원래 내가 습진을 앓고 있던 발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다는 사살이다. 거의 10여년 동안 동거를 했는데, 이제 아파트를 얻었다고 세칸살이 사글세 집 사정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른쪽 발바닥을 긁으면서 도대체 내가 긁는 발바닥이 10년 동안 긁고 있는 그 발바닥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세상사 이런 것인가.

10년동안 세균과의 동거를 한 발바닥도 한순간에 잃어 버리는 그런..

 

그럼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지금의 한탄이.. 언젠가 웃음의 날이 오면 다 사라진다는 그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어찌하여 이리 내 습진설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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