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정 잘못해서 망한 글..
1. 서론
1) 작가선정
2000년대에 들어 소설의 방향과 변신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변화와 속도, 무의미과 가벼움이 시대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시대에, 우리의 소설도 이와 같이 변해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김연수가 정직하고 무거운 글씨기가 더욱 특이하게 다가온다. 상복 많은 작가로 불릴 만큼 김연수는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대산문학상 수상 등 이름 있는 문학상에 꼭 그의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연수에 대한 평하는 호의적이다. 문학상을 받는다는 외적인 이유를 제처 두고 30대 젊은 작가로서, 그의 문학은 기존 문학 안에 있는 전통적인 글쓰기를 하면서 새로운 상상력으로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연수는 자신의 글쓰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라 하였다. 그의 소설은 대개 ‘김연수의 소설은 어렵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작가는 소설은 숭고한 것이며 자신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일 뿐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대중적인 글쓰기는 자신의 길이 아님을 천명하는 듯 보인다. 때문에 소설가 김연수에게 2000년대 문단의 블루칩이라는 과장된 수식어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여기서는 김연수의 문학사상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김연수의 문학을 고통의 극복으로 조심스럽게 정의하려 한다. 이는 고통의 원인을 소통의 부재로 보며, 고통의 극복이 어디에서 연유하였으며 그것이 어떻게 작품으로 드러나는지 살피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2) 작가 김연수
작가를 말하려 할 때 가장 처음으로 찾는 것이 고향이며 출신이다. 그는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2007 미당문학상 수상자인 문태준 시인과 고향친구로 중·고등학교를 함께 나왔다. 김연수는 시인으로 1993년 등단한 뒤 1994년 소설가 등단, 전향을 한다. 이유에 대해서 문태준이 시인으로 등단했기 때문이라 했으나 어디까지나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린다. 고향친구로, 문인으로서의 두 사람 사이에서 작품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은 없어 보인다. 김천에서 김연수에 대한 인식은 김천 역전 뉴욕제과점의 막내아들이란 것이다. 그의 초기 작품 중 김천 역전 뉴욕제과점과 관련된 작품이 있긴 하지만 김연수의 문학을 김천에만 잡아두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다음으로 살필 것이 시대다. 김연수는 1970년에 태어나서 1989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89학번은 이른 바 386세대의 끝이었다. 김연수가 말했듯 그가 알게 된 것은 캠퍼스의 낭만이 아니라 영문도 모른 체 화염병을 쥐어야 했고 공산당 선언을 외어야 했던 마지막 세대이다. 작가는 자신을 1991년 5월 이전과 이후의 김연수로 나뉜다 말한다. 그가 철저하게 믿고 있던 세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은폐된 현실을 폭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할 것인가가 내 소설의 관심사가 되었다고 했다.
등단했을 때 작가소감에 “이 소설을 나와 함께 뉴 트롤즈의 아다지오를 들으며 87년 대선을 투표권이 없는 눈으로 지켜보았고, 「영웅본색」,「개 같은 내 인생」,「천국보다 낯선」의 순으로 영화를 보았던 나의 세대에게 바친다.”(『작가세계』 1994년 봄호)라 말한 바 있다. 김연수는 급박하게 변해가는 시대를 관찰하면서 자신의 문학의 방향을 설정하고 글쓰기를 해왔다. 하지만 반드시 시대 속에 김연수 문학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일례로 「달로 간 코미디언」에서 90년대는 없다. 90년대의 작가라 말해지는 김연수의 이 작품에서는 1980년대와 2000년대만 있기 때문이다.
2. 본론
1) 김천 뉴욕제과점 막내아들
작가는 1970년 경북 김천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이 지나서 한국에 돌아온 그의 부모님은 ‘뉴욕제과점’을 열며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시대적으로는 이국적인 ‘뉴욕제과점’ 아들로 태어난 그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유복하게 보내게 되고, 이곳 뉴욕제과점 아들로의 생활이 기본적인 문학토대로 쓰이게 된다.
김연수는 인생에서 알아야 할 거의 대부분을 뉴욕제과점에서 배운 듯 보인다. 특히, 한가운데 텅 비어 있는 ‘도넛’에 자신의 존재를 빗대는 상상력은, 어려서부터 각종 빵을 보며 자란 빵집 아들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상상력의 소산으로 보인다.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빠져들었고 아파야만 한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이하 줄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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