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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정희진의 어떤 메모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엮음, 열림원, 1998(2002)
이 책에는 ‘다섯 연으로 된 짧은 자서전’이라는 작자 미상의 시가 있다. 무리를 무릅쓰고 요약하면 1) 길 가다가 깊은 구멍에 빠졌다.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 또 빠졌다. 역시 내 잘못이 아니었다. 또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3) 또 빠졌다. 미리 알아채긴 했지만 이제 습관이 되었다. 이번엔 내 잘못이다. 4) 길 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지만, 나는 그 둘레를 돌아서 지나갔다. 5) 난 이제 다른 길로 가고 있다.(116~117쪽)

시의 주인공은 세번째에는 깨달았다. 부러운 일이다. 다섯번, 여섯번, 열번째에도 맨홀 뚜껑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 평생 같은 문제를 반복하는 것이다. 매번 지각하는 ‘사소한’ 습관부터 나쁜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들, 사업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 약물중독자… 사람들은 말한다. “원래 좀 문제가 있어”, “중독자야”, “평생 골칫거리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와 이 잠언 시집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으리라. 1998년 첫 출간. 내 책이 2002년 41쇄본인데 13년이 지났다. 내가 생각하는 스테디셀러의 공통점은 두가지다. 이 책이 그렇다. “내 얘기” 같은 공감과 세월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인생의 이치를 알려주고 위로하는 글이다.

잠언(箴言), 즉 지혜는 얻는 방법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간단한 지식이 아니다. 대가를 요구하는 소중한 말씀이다. 잠언의 ‘잠’은 바늘이라는 뜻. 예상치 못하게 삐죽 밖으로 돌출하여 우리를 찌른다. 통증을 느낄 때는 이미 수없이 구멍에 빠져서 나도 타인도 깊이 다친 후다.

이들은 ‘문젯거리’라기보다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반복은 통찰의 부족일 수도 있고 해결되지 않은 욕구나 고통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나는 중립적인 의미에서 중독(中毒)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말 그대로 ‘독’의 한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알코올중독이든 일중독이든 외부 대상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해 한번뿐인 인생이 행복하기는커녕 평범하기도 어려운 사람들이다.

반복은 문제를 정확히 몰라서가 아니다. 개선할 만큼 모르기 때문이다. 혹은 근본 원인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이나 역사의 피해자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 문제를 규명하고 개선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쨌거나 가슴 아픈 일은 당사자는 고통 속에 살아간다는 점이다(지각하는 사람들 제외).

표제작대로 요지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 아니다. 알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의 법칙을 지금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삶의 의지가 고장 난 우울증 환자만 아니라면, 인간은 생존하게 되어 있어서 반복되는 자기 문제로 인한 고통이 극에 달하면 피해의식에서 후회로 전환되는 시기가 찾아온다. 후회, 뒤늦은 뉘우침도 쉬운 일은 아니다. 후회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에야 뼛속에 다른 물질이 스며서 발광할 만큼 아플 때, 그 몸의 인식을 말한다. “다른 길”을 가는 것은 쉽다. 실행 전에 깨닫는 것이 훨씬 어렵다.

나의 경우, 첫번째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평생일 수도 있고 나머지 세월은 첫번째의 연쇄, 후과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런 시들을 통해 인생을 복기하는 것은 어느 선까지만 바람직하다. 가정법은 불가능한 현실.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덜 고민했으리라, 부모의 사랑을 믿었으리라, 만나는 사람을 신뢰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했으리라, 더 감사했으리라? 깨달았다고 해서 당장 이렇게 사는 이들은 드물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나만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아는 사람은 알리라. 입맞춤이 얼마나 어렵고 드문 일인가를. 나는 “춤”보다 권투를 배우고 싶다. 가정법의 장점이자 단점은 현실과 분리된다는 점이다. 가정은 생각의 세계, 행복하다. 권투는 어려움이 많겠지만 지금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 ~ 했으리라”는 글귀에 만족하면서 일중독자로 살아야 갈 확률이 크다. 잠언은 지침(指針)이 아니라 위로다. 물론 위로만으로도 감사하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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