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스의 연설(카이사스 암살 뒤)
나는 시저의 상례식에 조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시저는 나의 친구였고, 진실하고 공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브루투스는 그를 야심가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브루투스는 인격이 높으신 분입니다. 시저는 많은 포로들을 로마로 데려왔습니다. 그 배상금은 모두 국고에 넣었습니다. 이것이 시저가 야심가다운 것입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려 울면 시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야심이란 좀 더 냉혹한 마음에서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브루투스는 그를 야심가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브루투스는 인격이 높으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루페르칼리아 축제 때 내가 왜 세 번씩이나 시저에게 왕관을 바쳤는데도, 그가 세 번 다 거절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야심입니까? 그런데 브루투스는 그를 야심가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부루투스는 확실히 인격이 높으신 분입니다. 나는 브루투스가 한 말을 반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 김용규, 생각의 시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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