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세종학당의 표준, 호찌민 세종학당입니다. 썸네일형 리스트형 말하는대로 기억을 느끼다 - 베트남에서 구두 닦았던 썰 큰 행사의 아침날, 유독 구두 한 켤레가 마음에 걸렸다.며칠 전부터 구두약을 찾았지만 살 수 없었기 때문에 내심 아쉬움이 더 컸다. 행사도 있는 날인데, 양복에 넥타이까지 나름 차려 입었지만 그 끝인 구두가 너무 더러웠다. 내 행사에 올 사람들에까지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패티김 선생은 항상 무대에 설 때 마다 새로운 신발을 신었다고 한다. 그것이 관객들에게 드리는 예의라 하였다. 사무실에 들어가면 휴지로 먼지라도 털어야겠다 마음 먹으며, 오토바이들이 가득 찬 횡단 보도를 건널 즈음이었다. 갑자기 자전거를 탄 한 사람이 내 옆에서 뭐라뭐라 하는 것이었다. 바지를 가르키기에 눈으로 급히 스캔을 하였지만 아무런 이상은 없었다. 다시 뭐랑뭐랑을 포기하지 않는 아저씨, 왠지 구두를 말하는 것 같아 다시 아.. 더보기 2023년 4월 28일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프린트기를 사다 프린트기를 사다 벼르고 별러 프린트기를 샀다. 한국에서는 하루에 나무가 미안할 정도로 프린트를 해대었지만, 여기서는 아직까지 내가 종이 한 장 프린트를 한 적이 없다. 나름 행정원인데, 이곳에서 정말 보고서 하나 제대로 쓴 적이 없고 고로 그것을 프린트 한 적도 없다. 생각해보니 어렷을부터 내 책상에는 반드시 프린트기가 있었다. 입력한 게 있으면 토해내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작 2달을 참았으니까 참을 만큼 참은 것도 같았다. 나보다 교원 선생님이 더 필요하다고 안달이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베트남의 전자 상가에 프린트기를 사러 갔다. 일단 돈 걱정은 없으니 좋은 것만 고르면 되었다. 하지만 말이 통하던가. 영어가 되는 직원이 설명을 해 주었지만 가슴에 콕콕 이해되지가 않았다. 일단.. 더보기 베트남어를 드디어 시작하다 베트남어 공부를 드디어 시작하다 이곳에 온 지 약 한 달이 넘어서야 베트남어 공부를 시작했다. 과외 선생은 광고를 보고 뽑은 영어 잘하는 젊은 학생이었다. 그룹 과외로 돈은 2시간 당 우리나라 돈으로 2만 5천원으로 정하였다. 아직 사무실이 없어 공부할 곳이 없었다. 당초에는 카페에서 하려고 하였으나 그냥 우리집에서 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베트남어의 성조를 실감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고 선생의 발음은 차이를 못 느꼈다. 그런데 뭐 성조가 중요하다고 하나 크게 부담은 없었다. 실로 가장 기뻤던 것은 정말 오랜만에 공부란 것을 다시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학생의 기분으로 돌아가니 뭔가 열심히 해 보겠다는 의욕도 솟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욕만 솟아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일단 발음은 가볍에 넘기고 알고 싶은 주.. 더보기 쇼파에서 잠 자기 않기 쇼파에서 잠 자지 않기 걱정이 있거나, 부담이 있거나, 짜증이 나거나, 씻어야 하는 데 귀찮거나, 술을 많이 먹고 왔거나, 내 능력은 이것 밖에 안 되는데 어쩌란 말인가 싶을 때 잠시 쇼파에 누워서 생각에 잠김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이 들고 허리가 아파 정확히 새벽 4시쯤 깨어 침대로 간다. 잠을 설치가 출근 시간이 되어 겨우 눈을 뜨고 씻으러 가는 것이 내 저녁 스케줄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렇게 침대로 끼 들어가더니, 이제는 쇼파에서 누웠다 절반의 잠을 자는 게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역대급 침대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막상 그 포근한 침대에서는 단 하루만 제대로 자봤다. 남들이 보면 무슨 나라걱정, 업무걱정에 하루를 꽉 채워 보내는 것 같지만 막상 그것도 아니다. 딴 생각하.. 더보기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사고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사고 함께 온 직장 동료의 오토바이 사고 소식을 들었다. 아침부터 울려댄 전화기에 불안감이 커졌고, 아니나 다를까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당하였다고 하였다. 집 근처여서 바로 달려갔다. 길가의 한 나무밑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고, 표정은 곧 울것 같은, 아니 너무도 상심이 큰 표정이었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이 타지에 와서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고, 과연 자신의 몸이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는 그 상황이라면 난 울고 있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간신히 눈물을 참고 있는 그 표정이 더 안쓰러워 보였다 종아리와 손등 등이 타박상이 났고, 심각한 것은 머리가 많이 어지럽다고 하였다. 오토바이 사고를 낸 놈은 어디로 갔냐 했더니 바로 도망을 갔다고 하였다. 헬멧과 선글라스를 벗어 던지고 말이다. 아.. 더보기 타지에서 사람 관계 타지에서 사람 관계 얼마나 이곳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계가 온 다면 어떤 부분에서 올까 생각을 해 보았다. 업무의 부담, 향수병(이건 거의 없을 것 같고) 등등을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나 사람과의 관계가 아닐까 싶었다. 이곳에서 몇 명의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관계를 맺을까.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는 딱 3명이라는 것이다. 한국에 있었다면은 최소 만나지는 못해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있었을텐데 여기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욱 혼자에 익숙해지고 자기관리가 필요해 보였다. 교민 소식지를 보고 놀란 것이 이곳에도 수십개의 대학교, 고등학교 동문회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와 연관된 동문회는 없었다.(해서 연락을 해야 하나 고민도 없었다.) 직업의 관계상 맺어야 하는 사람들 .. 더보기 자라탕을 먹다 자라탕을 먹다 어느 음식 프로그램에서였다. 일본 음식 탐방단이 유명한 음식점에 갔고, 요리사는 아주 귀한다는 음식 하나를 내왔다. '이것은 무엇인고'하는 당연한 반응이 이어졌고, 일본인의 말을 통역사가 전달해 주었을 때 음식 탐방단은 물론이고 그걸 보던 스튜디어는 비명으로 초토화가 되었다. 염소 고환이었다. 소리 지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그 일본 음식 탐방단의 태도였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비명을 지르고, 죽어도 먹지 않겠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정작 그 음식을 만들어 온 요리사의 기분은 생각해 봤던가. 그것도 일본의 한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은 생각해 본 뒤 행동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생각을 직접 실천할 기회가 있었으니 그것이 자라탕이었다(9월 16일) 껀터 대.. 더보기 이전 1 2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