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지고 피고지고는 인생들
어느 덧 칠순을 넘기신 할머니의 얼굴을 가끔 유심히 볼 때가 있다. 얼굴 한 가득 주름주름 마다 그동안 살아오신 세월의 회한이 담긴 듯 하다. 늙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볼 때 마다 우리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보고 지금까지의 걸어온 시간을 잠깐이나마 되돌아본다. ‘피고지고 피고지고’의 주인공들 또한 마찬가지다. 세 명의 주인공들 모두 늙어 삶을 되돌아보는 노인들이다. 이들 세 명의 노인들이 자신들의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는 모습과 더불어서 그동안의 인생에 대한 정리가 이 연극이 전해주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두컴컴한 굴을 지나온 듯 세 사람들이 석탄을 캐는 일꾼들이 쓰는 모자를 쓰고 등장한다. 그들의 얼굴과 복장들은 영락없는 탄광의 일꾼들이다. 그러한 복장을 하고서 그들만의 거처에 모습을 들어낸다. 전체적으로는 탄광의 일꾼들이지만 그들의 대화에서 탄광의 일꾼이 아닌 다른 직업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도굴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굴꾼들의 나이가 심상찮다. 세 모두 노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집에는 ‘신왕오천축국전’이라는 나무패가 걸려있고 이름 또한 각자 왕오, 천축, 국전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대머리의 남자가 왕오였고 유난히 힘이 없어 보이는 회색 머리카락의 천축, 그리고 그들 중 가장 젋고 세련된 늙은이가 천축이었다. 오늘도 어두운 갱 속에서 나왔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는 듯 하다. 그들은 각자의 옷을 갈아입고 덧없고 무의미한 투정들을 늘어놓는다. 특히 도굴에 성공하면 무엇을 할지에 관해서는 서로들 열을 올린다. 천축은 노인들을 위한 실버산업을 꿈꾼다. 국전은 자신이 도굴을 해서 번 돈으로 마카오의 여행을 설계한다. 이렇듯 이들 모두는 한탕의 성공을 꿈꾸며 오늘도 돈황사의 도굴에 힘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살아갈 날 보다는 지나온 날이 더 많은 이들에게 살아가는 날들이 점점 무의미해져 가는 듯 보인다. 희망을 걸고 매달리고 있는 도굴에는 진전이 없다. 그들이 파낸 것은 알게 모르게 혜초라는 여인에게 감정을 평가하지만 결과는 오리무중이다. 그렇게 앞으로의 날들에 대해 논의하고 싸우던 중에 천축이 오랜만에 회식을 제의한다. 그들이 마을에 가서 식사를 하자는 것에 모두 동의하지만 그곳까지는 30리 멀어진 곳이다. 하지만 그 거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먼 곳까지 가서 밥을 먹는 것까지 노인들에게는 삶의 새로운 일상으로 생각되었다.
외식을 다녀온 후 때마침 우연으로 온 비 때문에 그들의 거처에 난타라는 여성이 머물게 된다. 난타는 그들과도 안면이 있는 사이다. 원래 난타라는 여성은 국전이 사모하고 그들에게 도굴에 대한 정보를 주고 일을 사주했던 혜초라는 여자는 왕오가 좋아하고 있다. 누구누구를 좋아하던 간에 이 늙은이들에게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삶의 활력소 그 자체였다. 이들셋은 난타가 머물게 된 것을 너무도 좋아한다. 그들이 난타의 손을 잡고 싶어하고, 그녀의 몸을 만지기 위해서 노력한다. 늙은 나이에 결혼도 못하고 여자에게 매달리는 모습이 안쓰럽다. 또한 난타는 30대 한의사와 혼담이 오간다고 하자 국전을 선두로 난리를 치기까지 한다. 난타는 늙은이들을 적당이 요리하면서 파고 있는 굴을 보여달라고 한다. 그녀와 함께 천축이 들어가고 왕오와 국전만 남게된다. 왕오는 국전에게 그녀와 함께 굴에 들어가지 않음을 이상이 여기지만 국전은 그냥 넘겨버린다. 국전은 혜초를 만나러 나갈 준비를 하지만 왕오는 말린다. 혜초는 그들에게 신라 때 보물이 묻혀 있다는 절터를 소개해 준 인물이지만 긴 시간동안 그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여자다. 왕오는 그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만 국전은 아니다. 그녀에게 일을 의뢰받고서 그들 셋은 이번 일을 일생의 거대 프로젝트로 삼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들은 신왕오, 신천축, 신국전이라 이름을 창씨개명까지 했다. 그러나 3년여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물은 나오지 않자 점차 의구심이 차올랐다. 보물이 애당초에 없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불신과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두 사람 사이에 작은 툼이 발생한다.
국전이 나가고 없는 사이. 왕오와 천축. 둘 만 있게 된다. 천축은 그에게 국전의 비밀을 알려준다. 사실 국전은 성적 장애자였다. 그가 추행했던 우체국여자가 죽자 그는 심적 고통을 안게 되고 어린 아들마저 죽게 된다. 그러한 비밀을 듣게 되는 왕오는 측은한 마음이 생겨 그와 싸운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천축은 누구보다도 지기 싫어하고 젊게 살고 싶어하는 국전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여태껏 그에 맞춰 다독거리고 있던 것이었다. 또한 천축은 그가 오랜 기간동안 짓고있는 자성비의 일부를 들려준다. 무대 한쪽에 놓여있는 천축의 자성비. 그것은 자신이 죽고 무덤에 세울 비석처럼 보였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분에 생각한 자성비의 내용은 ‘피고지고 피고지는 인생사’ 라 시작되고 우리네 인생사를 되돌리고 다시금 반성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천축의 자성비 내용을 들은 왕오는 굴로 들어가려고 하고 그때 국전이 들어온다. 밖에서 들어온 국전에게 따뜻한 콩나물 국을 건네는 왕오. 그리고 왕오와 천축에게 함께해온 세월동안 미안했던 것을 털어놓는다. 이처럼 세 노인네들은 서로를 보다듬고 의지하면서 함께 살아왔던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꿈을 꾸며 도굴현장으로 들어갈려는 순간 천축은 그들에게 말한다. 그까지 많은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할 것이냐고. 지금 우리의 나이에 많은 돈이 중요하냐고. 그러면서 그의 자성비 일부를 들려준다. ‘피고지고 피고지는 우리의 인생사.......’ 천축이 말하는 우리의 삶을 정리하고 반성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왕오와 국전은 그들이 살아왔던 의미와 앞으로의 희망을 새로 다짐한다. 그리고서 다시 옷을 갈아입고 세 노인들은 굴 속으로 들어간다.
어쩌면 그들 모두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보물같은 것은 없었을 것을 알고 있었을 수 있다. 그들에게 일을 시킨 혜초도 말했었다. 굴을 파면서 지난날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라고. 노인들도 어쩌면 그들이 하는 일은 보물이 아닌 도굴이란 작업을 하며 서로를 안아주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왕오는 한번 또 한번 굴을 파면서 지나온 날들에 대한 속죄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이 마냥 보물만은 노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일획의 꿈을 꾸지만 그것은 저 멀리에 있고 그 꿈은 결국 피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우리네 인생사처럼. 피고지고 피고지고는 우리의 삶을 그들의 모습에서 생각하게 한다. 끝으로 그러한 젊음의 열정으로 대학생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영그리의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과 함께 내 모습을 반성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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