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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란 말 참 좋지요/치악(治樂) - 마음을 다스리다

담백한 맛, 하여가

 담백한 맛, 하여가

 

 맛을 잘 못 느낀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퇴화시킨 능력 중 하나다. 자취생에게 맛에 민감하다는 것은 불행이다. 아무 것이나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찬물에 밥을 말아 먹어도 냉면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처참히 실패한 김치전도 먹을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이러한 미각을 소유한 나에게 '담백하다'고 느낀 노래가 있었으니, 요즘 줄곧 듣는 서태지가 만들고 우리동네 복면가왕이 다시 부른 '하여가'이다.

 

 가면을 쓰고(이제 계급장 떼었으니) 노래 실력을 겨루는 프로그램인 '복면가왕'에서, '우리동네 음악대장'이란 사람이 '하여가'를 편곡하여 불렀다. 요즘은 가면을 쓰고 노래 실력을 겨우다 결국 우리동네 음악대장이 이기는 프로그램이 되었을 정도로, 이 노래 또한 정말 잘 불렀다. 하필 하여가(何如歌)라니. 서태지와 아이들이 주변의 무시를 무시하고 '난 알아요'로 대한민국 가요계에 이정표를 세우더니, 그 이정표에 말뚝을 완전히 박은 노래가 하여가로 기억한다. 당시 태평소와 꾕과리를 사용한 것이 한국적인 음악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았다. 옛 악기를 사용하면 한국적인 음악인지 의문을 갖게 하였으나, 당시 하여가는 대중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 들어 이 노래의 가사가 가슴에 꽂힌다. 이별의 감정이 모자르지도, 과하지 않다. '담백하다'라는 맛이 이런 맛일까. 침이 고인다. 가사를 뜯어본다. 남자는 이제 사랑의 감정이 이상해졌음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었던 마음이 돌아오고, 나의 연인이란 믿음이 틀렸다고 표현한다. 오! 이 세련됨이란! 그리고 냉정해진다. 변해버린 건 필요가 없다고. 그렇다. 사랑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볼때마다 가슴이 떨렸는데, (그래서) 모든 걸 너에게 던졌는데 이젠 아니란다. 난 이 '던졌다'는 표현이 참 좋다. 그래, 모든 걸 던져야 사랑이지. 예전에는 혼자 있었을 때도 너를 기다릴 수 있어 기뻤다 한다. 사랑에 빠진 상태를 과한 조미료를 넣지 않고 덤덤히 잘 짚었다. 이제 정상을 향하여 노래를 내딛는다. 이제는 너를 위해, 즉, 헤어진 여인을 위해 남겨둔 것이 있단다. 무엇일까. 해맑던 네 미소가 담긴 사진이란다.

 

 남자는 여자를 놓아주며 노래를 끝맺는다. 너가 다시 돌아올 날까지 이 곳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지저분하게 붙잡고 울지 않는다. 쿨한 것 같으면서도 손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보냈다는 시가 '하여가'다. 시대는 변했으니, 이런들 저런들 상관하지 말고 잘 살아 보자고 하였다. 남자가 여자에게 하고 싶은 말도 이런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첫 소절의 말처럼, '난 그냥 이대로' 널 사랑하겠으니 돌아오기만 해달라고. 가사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요즘 들어 계속 듣게된다. 문득, 이 곡을 만든 서태지까지 다시 돌아보게 한다. 사생활은 접어두고, 한국 가요계의 큰 틀을 바꾼, 페러다임을 제시한 예술가임에 틀림없다. 모름지기 진정한 아티스트란 이런 사람이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하고 난감해지기도 한다. 또 다른 아티스트를 자처하는, 박진영 어머님은 누구일까? 다음에 한 번 풀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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