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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학교 얼쑤국문/내 자식들

이오네스코의 수업, 보르헤스의 모레의 책


- 진짜 쓰기 싫었나보다..쪽팔려..

이오네스코의 수업을 읽고서

 

그들의 대화는 단순하고 바보스럽지만 그러한 언어들이 가져온 결과는 놀랍고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어떤 한 여학생이 늙은 교수의 집에 방문하여서 공부를 한다. 이 여학생은 장차 전체 박사학위라는 목표를 갖고 있다. 늙은 교수 또한 이 학생의 목표에 만족하며 수업을 나간다. 하지만 이 집의 하녀는 그것에 반대한다. 교수의 수업에는 큰 문제가 있다고 교수를 말리지만 교수는 나랑 곳 하지 않고 수업을 진행한다. 첫 수업은 수학이었다. 여학생은 교수의 덧셈문제를 잘 푼다. 하지만 뺄셈문제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덧셈은 하지만 뺄셈을 못하는 학생에게 늙은 교수는 언어학을 가르치려 한다. 하녀는 또다시 교수를 막는다. 그녀에게 언어학을 가르치려는 것은 재난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교수는 하녀의 말을 무시한다. 하녀는 언어학은 ‘재난의 불씨’라고 하면서 나간다. 늙은 교수의 언어학강의에 소녀는 이해를 못한다. 그리고 계속하여 이빨이 아프다고 한다. 계속되는 언어학강의에 소녀는 실증과 피곤함을 느끼고 이에 교수는 화가 난다. 결국 교수는 식칼로(보이는 식칼 혹은 보이지 않는 식칼)로 소녀를 살해하게 된다. 교수는 후회를 느끼지만 이렇게 해서 죽인 사람은 오늘하루 40명이고 또다시 이러한 일과는 반복된다.

수업은 희극적이고 한편으로는 비극적으로 끝을 맺는다. 한 나라의 석학인 교수가 그가 가르치고 학문을 전수해야하는 학생을 죽인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교수는 학생을 ‘아가씨’라 부른다. 애초에 학생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의심이 든다. 교수가 가르치는 내용은 무의미한 수업이다. 수학은 그것은 고등교육이 아니라 초등수준의 유치한 수업이다. 교수의 모습과 전혀 반대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학생에게도 있다. 덧셈은 어떻게 한다고 치더라고 그녀는 뺄셈을 못한다. 그러한 학생이 목표는 전체 박사학위 취득이라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그녀는 백치수준인 학생인데 말이다. 수업은 수학에서 언어학으로 넘어가면서 절정에 이른다. 자신의 수업에 지루해하는 학생에게 교수는 점차 난폭해지고 광기에 젖어든다. 결국 그것에 도취되어서 살인을 저지른다. 어쩌면 그녀는 원래부터 언어학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이빨이 아프다는 것은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이가 아파서 말하기 싫고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태. 학생은 언어학을 애초부터 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던 듯싶다. 살인을 할 때 식칼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칼로 죽였다는 설정이 재밌다. 하루에 40명을 살해했다는 과장된 표현과 다시 그러한 수업의 반복암시. 애초에 이 모든 현실이 가상의 현실인 아니었을까.

 

 

 

보르헤스의 모래의 책을 읽고서

 

어느 날 문을 열어보니 낡은 옷을 입은 가난한 이방인이 있었다. 그는 무언인가 팔려는 사람 같았다. 그를 집안으로 안내한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방인은 ‘성경’책을 팔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 집에도 이미 성경책은 많이 있었다. 단순한 성경책을 넘어서 희귀본인 성경책을 포함해서 성경책은 사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방인이 꺼낸 성경책은 신기한 것이었다. 그것은 페이지가 무한한 것이었다. 나는 성경책을 한번 펴본 다음 다시 그 페이지를 찾으려 했지만 매번 펼칠 때 보다 찾을 수 없었다. 정말 그것은 무한한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비싼 돈에 샀다. 그 이후에 그 이방인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나는 무한한 책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 책을 계속해서 연구해보았지만 결론은 그 책은 끝이 없는 신비로운 책이란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태우기로 했지만 포기하고 국립 도서관 어딘가에 아무도 볼 수 없는 책꽂이에 조심스레 꽂아놓고 나온다.

보르헤스가 말한 성경책은 어떤 책이었을까. 첫 번째는 책이라는 존재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한권의 책이 갖는 무한한 의미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한권의 책에는 수많은 의미와 정보가 있고 그것은 끝이 없는 것이다. 작가의 책에 대한 열의가 나타난 것이라 생각되다. 두 번째는 work의 의미에서 책이다. 훌륭한 책이란 것은 작가가 던져준 문제에 독자가 완성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독자는 책을 변형시킬 수 있거나 더욱더 완성시킬 수 있다. 같은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모래의 책이라는 것은 애초에 만들 수 없다. 바람이 세게 불면 책이라는 존재는 날아간다.

하지만 그것을 작가는 책이라 한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지만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결국 나는 책이 무섭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것을 태우려고 한다. 이때에 나는 다시 생각한다. 무한한 책을 태우면 무한히 타겠다는 생각을 한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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