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아낙 2009. 9. 4. 21:17
- 6.25 전쟁에 대해 소설형식을 약간 빌어 썼던 짧은 글

 

6.25에 대해서

 

- 연적지의 정체를 아냐?

선배가 후배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대며 천기누설을 하는 마냥 조용히 속삭인다.

- 원래 저 가운데 제방 밑으로 수천리 들어가면 예전에 별주부전에 나온 용궁이 나오지. 저기 보이지? 대학본부 올라가는 계단. 저곳이 거북이와 빠이빠이 한 토끼가 도망친 도 주로란다.

그럼 그렇지. 이 엉뚱한 학형을 어찌 말릴 수 있을까. 사랑스런 후배의 실망스런 표정을 보고 선배는 자세를 고쳐 잡고 묻기 시작한다.

- 내일이 6.25네. 넌 6.25가 왜 일어났는 줄 아냐.?

잠시 쭈삣 거리다가 당연한 걸 묻느냐는 식으로 답한다.

- 그거 김일성이 소련이랑 짜고서 남한을 먹으려 했던 거 아닙니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선배는 사악한 표정을 짓다 말한다.

- 저기 쓰레기통 보이냐?

어젯밤 연적지의 운치를 벗삼아 술을 즐겼을 지성인들의 흔적이 쓰레기통을 넘쳐 흘렀다.

- 저 쓰레기통을 발로 꽉! 밟으면 부피는 줄어들겠지. 하지만 발을 떼는 순간 구더기 스멸거리며 기듯이 꾸역꾸역 부피가 늘어나겠지. 우리가 그랬다는 거야. 발에 밟힌 쓰레기처럼. 우리민족을 쓰레기라 하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말아. 생각해봐. 우리민족이 언제 자신의 이성대로 외치고, 뻗어나갔던 적이 있냐. 고대의 계급사회부터 삼국시대, 지나고 지나고 지나서 조선시대도 그랬지. 짜증났던 35년을 살았던 때를 예를 들어보자. 그때는 지난 시간들보다 더 심했는지도 몰라. 양 손을 위로 번쩍 들면 대한독립만세로 오해받아 끌려갔겠지. 실수로우리말이 나오면 얼른 손으로 잡아서 입으로 쑤셔 넣어야 했겠지. 비단 일제시대 뿐이겠냐.이것을 하면 꽉 밟히고, 저것을 해도 꽉 밟히면서 그렇게 발로 눌려졌던 게 우리민족의 삶이었던 거야.

- 선배. 너무 새디스트다. 어쨌든 해방이 되어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었잖아요. 그게 전쟁하고 무슨 상관이예요?

후배는 잠시 ‘마운틴 듀’로 목을 축인다. ‘오리지날 아메리칸 스타일 맛’이라 쓰여있다. 미국놈들은 참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할 때 선배가 말을 이었다.

- 물론 우리도 이제 그러한 억압에 풀려나 부풀어 오르려고 하였지.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것을 역이용했어. 그 마음을 꿰뚫어 본거지. 전쟁이란 달콤한 사탕을 주면서 말이야. 전쟁. 그것은 하나의 면죄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행동과 생각에 대한 무언가를 물어보지 않아. 사람의 욕망을 한순간에 풀어주지. 사람은 유희적으로 놀수록 그 반대급부는 크지. 아침에 축구를 하고 수업 들어오면 졸려 죽겠지? 남자와 여자가 진도를 나갈수록 서로에 대한 책임은 커지는 것 하고 똑같잖냐. 그런데 전쟁이란 것은 이러한 책임을 없애는 놈이야. 억눌렀던 무언가가 분출되는 과정을 그것도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비도덕적인 형식으로 말이야. 방종이 자유라고 느끼게 해주지. 사람 사는 가정집에 들어가 모든 것을 갈취해도 되고, 옆집 꽃순이를 범해도 되고, 사람이야 총으로 쏴죽여도 아무렇지도 않지. ‘이새끼 인민의 반동분자입니다’ 라고 덮어씌우고 죽이면 그만이야. 전쟁이 속이는 사탕발림중에 가장 큰 것이 죽음의 장치를 보자.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누구에 의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몰고 가서 사람의 도덕성을 잠식시키는 것 아니겠니. 6.25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잠시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 올랐다 모습을 감추는 것을 바라본 후 선배는 말을 이었다.

- 어떠한 마을이 있다 하자. 그곳 구성원들이 해방 후 삶을 꾸려나가고 있지만 분명 예전에는 지주였던 사람도 있고 소작농이었던 사람도 있겠지. 화전민이었던 사람도 있겠고. 소설 봄ㆍ봄의 점순이와 장인. 데릴사위도 살고 있다고 치자. 아무리 수평적인 삶의 터전이 열렸다한들 조상부터의 주종관계가 잊혀 질까? 삼룡이의 할아버지는 동네 김진사의 집에서 쌀을 못 갚아서 멍석말이를 당했고, 아버지는 그 집 머슴살이를 했다고 생각하면 삼룡이는 지금의 김진사를 어떻게 볼까. 이웃집 아저씨? 아마 아닐거야. 만약 삼룡이가 작은 원한을 갖고 있었다면 전쟁이란 놈의 꼬득임에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생각해봐. 전쟁 속에서는 아마 점순이의 아버지도 사위를 마냥 홀대할 수는 없을 거다. 현실에서는 분출할 수 없는 에너지들이 모여서 비도덕적으로 발산되는 게 전쟁인 것 같다고 생각돼.

- 하긴.... 형말 들어보니 할머니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우리과에 기형도 시집 들고 다니는 문기아시죠? 저랑 같은 동네에 사는데 할머니께 문기 애기 좀 하면 ‘아, 조순경네 아들내미’ 그러세요. 어느 날 ‘순경’이라는 의미를 생각해봤는데 일제시대에서는 무서운 경찰 아니겠습니까. 분명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칼을 차고 있던 일제시대의 경찰이미지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 이미지가 왜곡되어 전쟁과 만나면 한동네 사람도 찌르고총을 겨누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듯 하네요.

- 너무 비논리적이었는데 내가 말할려고 하는 걸 경청해줘서 고맙다. 전쟁이란 얼마나 무 서운 것인가 생각해 봤니?

- 솔직히 전 느낄 수 없는 것 같아요.

- 느낄 수 없다고..... 솔직히 너 학비랑 용돈 부모님이 보내주지? 이 켕커루야.

키득거리는 선배 앞에서 후배는 대꾸할 수 없었다. 선배는 학비 때문에 1년을 쉬었고 그 돈을 모두 자기가 벌었다. 지금도 예외는 아니었다.

- 그냥 들어줘. 나는 돈을 못 벌면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현금인출기의 명세표를 뽑아 볼 때마다 줄어드는 숫자에 가슴이 막힌단다. 보릿고개가 뭔지 알지? 광주리의 쌀이 줄어들 때마다 사람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생각해봐. 먹을 것이 없다는 거야. 먹을 것이. 상상이 되니?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이 죽는다는 게. 6.25때는 얼마나 심했겠냐. 미군한테 ‘기브 미또 쪼코레! 먹던 것도 괜찮아~♬’를 부르던 게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였어. 꿀꿀이죽 한 숟가락에 온가족이 모여들었겠지. 쥐구멍 속에서도 희망이 없었는데 동생도 형도 내일의 삶이 기다려졌을까. 아버지는 죽은 자식을 폐허 속에 묻고 길을 출발하고, 다리가 끊어졌다는 것도 모르고 건너가던 사람들은 삼천궁녀의 운명이었겠지. 경험할 수는 없어도 상상의 경험은 어떨까. 어떻게 내가 그 시대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나 있겠냐. 난 그 시대의 문학작품이라면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다른 건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명나라 말의 똥에서 섞여 있는 겨를 골라 먹었다’는 부분에서 정신이 들더라. 역사가의 말보다 그 시대 작가의 한마디가 더 정확한 것 아니겠니. 간접적인 체험을 위해 우리 책 좀 보자.

후배는 수긍의 표현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 형의 말을 들어보니 우리는 6.25의 교훈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아요.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하면 수고꼴통으로 몰고 보수적, 좌파로 내모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요. 불과 50년 지났을 뿐인데 그런 점에서는 안스러울 따름이네요. 그 교훈을 얻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과 눈물이 있었습니까.

- 그래 너의 말이 맞다. 우린 너무 빨리 잊었어. 아직도 휴전중인데 말야.

-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아직 예비군 신분인데요. 헤헤

선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반대편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오고 있

었다. 병아리 삐약삐약과 참새는 짹짹이라는 고유의 레파토리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왜 옷은 항상 노란색일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연적지 수면위에 놓일 때쯤 선배는 입을 열었다.

- 어쩌면 말이다. 우리는 지금도 6.25같은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의 게시 판, 특히 악플을 봐봐. 익명성의 가면을 쓰고서 사람을 공격하지. 연예인에 대한 시기와 질투, 부러움이 익명성과 만나서 그런 결과를 낳는 것 아닐까.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논란 이 많잖냐. 제대로 된 비판의식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지. 하지만 제대로 된 비판은 꼭 숨어서 해야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자신의 이름 세 글자 말하지 못할까. 또한 자살률은

매번 증가하잖냐.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복잡해지는 데 낙오자들의 입장은 말하지 않고 있 잖아. 모든 것이 새로운 전쟁을 야기할 수 있고 그러한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봐

- 형, 좀 쉬엄쉬엄 살아요. 아무튼 날씨도 더운데 좋은 말씀 감사해요. 저도 공부 좀 해야 하는데 부끄럽기만 합니다.

- 그러한 의미로 숙제하나 내줄게. 전쟁이야기도 나왔으니까 너 히틀러가 그린 그림 봤냐?

후배는 어불성설이란 표정을 짓는다.

- 히틀러가 그림도 그렸습니까? 진짜 우낀 놈이네요. 전쟁광이 무슨 그림입니까?

역시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선배의 표정이 득의양양하다. 그리고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 있잖아. 히틀러가 미술학과 출신이래. 미술학과 사람이 그림그린 건 당연한 거 야냐.

그럼 니 말대로 미술학과의 히틀러와 전쟁은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생각해보기다.!

당연지사 후배의 얼굴은 기묘하게 일그러진다. 숙제를 안 한다고 해서 혼나는 건 아니지만 둘만의 세미나가 점점 철학적으로 변하는 건 같아 머리가 아파온다. 어느 덧 연적지 주변의 모든 식물들이 신록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하늘은 푸르다. 그들의 청운의 꿈이 익어가는 듯이 말이다.


반응형